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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미 전
류병학,『월간미술』(2007년 7월)

 

윤정미 전 / 6. 14 - 24 금호미술관

“1914년 미국 신문 <<The Sunday Sentinel>>에서는, 부모들에게 “만약 당신이 이 시대의 관습을 따르려면, 남자 어린이들에게는 핑크색을, 여자 어린이들에게는 파란색을 사용하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겨우 제2차 세계대전 후에야 비로소 미국과 다른 지역에서, 소녀들을 위해서는 핑크색을, 소년들을 위해서는 파란색을 주는 젠더에 따른 색의 변화가 일어났다.” (윤정미 <작가의 글 :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중에서) 박건희 문화재단이 선정한 제5회 다음작가상을 받은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전이 지난 6월 14일 금호미술관에서 오픈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미국 신문은 ‘부모들에게' 블루 걸과 핑크 보이를 당대의 관습으로 보도했단다. 그런데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뿐만 아니라한국에서까지 핑크 걸과 블루 보이라는 색의 변화가 일어났다. 와이?

혹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당시 ‘감성'을 상징했던 핑크 보이가 2차 세계대전 후 블루 보이로 전이된 것은 전쟁에 대한 반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핑크 보이에서 핑크 걸로 전이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남성을 평화의 상징으로 채택하면서, 여성은 감성(핑크)의 상징으로 전이 '시킨 것'이 아닐까? 1920년 미국에서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주자는 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사회복지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 특히 영국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의 활약에 대한 보상으로서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에게, 1928년에 21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점과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하여 1970년대 세계 각지로 파급되었던 여성해방운동을 상기해보시라!

그럼 오늘날 세계화된 블루 보이와 핑크 걸은 미국의 정치적 색깔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글타!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윤정미가 중얼거렸듯이) “젠더와 소비주의, 물질주의, 광고, 도시화, 소비주의와 세계화와 같은 다른 이슈들을 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필자에게 윤정미의 사진은 색깔 논쟁에서 사물논쟁으로도 전이된다. 테스는 바비인형과 마찬가지로 윤정미의 사진세계 속에서 다른 사물들과 분류되어 진열된 ‘사물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헉! 그럼 달콤한 핑크세계 속에 쌀벌한 프로젝트가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