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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수의 Photo Talk - 윤정미
최건수, 『미술시대』(2007년 4월), p146-151

 

‘그녀의 출발은 자신의 머문자리를 살피는데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머무르면서 관시의 범위는 바깥세상으로 향한다. ‘나'와‘세상'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무지개다리 하나를 걸쳐 놓는 것이다.'
- 최건수 / 사진 평론가

Q 건수 : 서울대 회화과 출신이면 미술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이 있지요. 그런 것 버리고 사진으로 표현 매체를 바꾸셨습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다음 작가상'까지 수상하셨고, 수상 전시회를 준비하시고 계시니 변신은 성공적인 것 같군요. 어떻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A 정미 : 대학 졸업 후 판화작업을 2년 정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작업을 쉬고 있는 사이에 취미삼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홍대 대학원에 들어갔지요. 친구의 권유도 있었고, 홍대 김대수 교수님 작업도 판화, 설치가 들어간 사진작업을 하시고 계셔서 그런지, 전공을 바꾼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을 했는데, 알아갈수록 사진 한 장에 모든 것을 담는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Q 건수 : 화가들이 사진에 갖는 관심은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점 더 커졌어요. 보다 쉽게 드로잉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것이 이유이고, 카메라 옵스쿠라가 그 예지요. 최근까지도 화가들의 입장에서는 카메라가 단지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주는 기구라고 생각해서 그 가능성은 별로 주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양쪽의 매체를 다 다루어 오신 입장에서, 당신이 주목하는 사진의 가능성은 무엇입니까?
A 정미 : 요즘 사진에 대한 접근태도가 너무 다양해서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사진을 하다보면, 한 장의 사진만을 가지고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판화 같은 복수성과, 사물과 만나는 직접성, 순간성 등도 가능성이자 매력이지요. 계획 하에 촬영을 하게 되지만, 뜻하지 않았던 요소들을 후에 발견하게 되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러니 사진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나 매력은 풍부하다고 보아야겠지요. 이런 점들이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사진을 주목하게 하는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Q 건수 : 대학원 졸업 시 발표한 것이「동물원」연작이었지요? 동물에 보내는 시선이 특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분히 사적이고 은유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느껴지는데 당신에게 동물원은 무엇입니까?
A 정미 : 처음 사적인 은유로 출발을 하였지만,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사육되는 동물들을 사회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보편적 사람들의 삶의 은유적 표현으로 확대가 됐지요.

Q 건수 : 저는 프레임 속에 동물보다는 그것들이 속해있는 공간을 해석하는 작가의 인식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속해 있는 울타리 안의 부자유스럽고 어색한 공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연이나 생뚱한 그림 같은 것들이지요. 정작 동물들은 프레임 속에서 중심적이지 못하고 한 쪽으로 밀려나 있지요. 참 이상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지요.
A 정미 :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이 사회나 시스템 등에 대한 은유로, 동물들은 그 사회체제 안에서 길들여진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동물원의 상징성은 사회나 시스템 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이 정한 시스템, 룰 등이 될 수도 있겠지요. 보시면 한쪽 눈만 있는 부엉이, 한쪽 상아만 있는 코끼리 같은 불완전한 동물들도 빈번히 등장합니다. 이것 역시 현대인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지요.

Q 건수 : 이 시리즈 후에 죽은 동물들의 무덤(?)인「자연사 박물관」으로 작업이 연결됐지요?
A 정미 : 주로 촬영했던 동물원 입구에 있는 작은 표본실에 들어가 봤는데, 동물원이나 자연사 박물관들의 사회적인 역할이라는 것이 교육적인 목적이나 여가 활동을 위한 장치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육되는 동물들은 야성을 잃어버리고, 체계적으로 분류되어 전시된다는 면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있었지요.

Q 건수 :「자연사 박물관」을 보면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Dioramas」가 생
각 납니다. 그 작업과 어떤 변별점이 있을까요? 스기모토의 작업이 비사실을 사실처럼 보여 준다고 하면 당신의 작업은‘이것은 모조'이고 ‘죽은 것'이라는 점을 과장하여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더욱이 박제된 동물과 배경으로 그려진 디오라마는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기만 합니다.
A 정미 : 맞아요. 그의 작업은 진짜와 가짜가 구별이 안돼요. 그 가짜가 보는 사람을 영원한 시간 속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을 줘요. 반면에 제 사진은 가짜임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유치한 배경그림과, 생뚱맞게 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동물들을 보면 금방 알지요. 한국 호랑이와 미국 늑대의 동거, 웃기지요? 금방 들통날 나무무늬 시트지로 만든 자연은 또 어떻고요. 정확하게 수직이 맞지 않아, 엉성한 원통 모양의 진열대에 붙어있는 딱따구리는 또 뭐예요. 동물이 마치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엽기적 동물들, 촌스럽고 키치적인 색깔... 이런 것들이 제게는 재미 이상이었어요. 저는 이런 느낌을 보여주기 위해, 박제된 동물의 표지판 등이 나오도록 찍고, 키치적 컬러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Q 건수 : 화제를 미국 유학시절로 옮겨 볼까요? 작업을 보면「Red face / 2004」「Super woman / 2004-2005」「Korea in NYPL / 2004-2005」「The Stars & Stripes / 2004」「The Pink and Blue Project / 2005-2007」등이지요? 이 작업들의 공통적인 점은 모두 정체성의 혼란을 문제 삼는 것 같습니다. `나',‘국가',‘아이들'의 정체성 같은 것들이지요. 이러한 정체성에 관한 확인, 의문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지요. 작품을 보면 당신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곳 생활과 더불어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요.
A 정미 : 처음에는 그동안 제가 하던 작업의 스타일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그래서 애용하던 핫셀브라드 카메라 대신 35mm카메라를 들고 다녔지요. 그러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저와, 제가 처한 환경, 우리나라의 상황 등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머무는 곳에 따라 작업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진을 주 매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한국에서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이었지요. 아이들과 집안과 관계되는 여러 일들이 많아지면서, 한국인, 여자로서,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 (살아간다기보다는 버틴다, 견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고요.)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 생각들이 ‘Red Face`, `Superwoman` 같은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Red Face`의 작업의 경우, 신문의 한 연극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한 여인이 자신의 이마에 ‘Sin`이라고 쓰고 연극을 하는 기사를 봤지요. 그 기사를 보면서,‘주홍글씨'생각도 나고, 여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죄인 같다는 생각이 오버랩 되더군요. 세수하려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거울을 보니, 그곳에 비친 내가 보이더군요. 문득 ‘나는 누구일까?'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서 ‘나'라는 얼굴 위에, 여러 가지 나의 역할, woman, mother, wife, korean, daughter, daughter-in-law, endure 같은 단어들을 빨간 립스틱으로 써봤어요. 얼굴이 글씨로 완전히 다 빨개지면 휴지로 닦아내고, 그 얼굴 위에 또 다시 쓰고, 닦아내고, 쓰고, 지우고, 이 쓰기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나의 하루하루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역할들을 생각해 봤어요. 평소에는 섹시한 빨간 립스틱이 이 작업에서는 여성의 삶이나 희생 등으로 상징화 된 것이지요.
9.11 이후 심해졌다고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애국심을 넘어 미국제일주의를 연상케 하는 일상에서의 성조기 사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성조기'시리즈도 제겐 의미 있고요, 특히 지금까지 진행 중인 ‘The Pink and Blue`는 특히 애정이 갑니다.

Q 건수 : ‘The Pink and Blue Project'는 제게도 흥미롭습니다. 시각적 즐거움도 생각거리도 많이 제공하더군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까?
A 정미 : 분홍색을 특별히 좋아해서, 분홍색 옷만 입고, 분홍색 물건들만 사는 제 딸에게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전에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고, 딸의 다른 한국 친구들에게서도 그런 경향을 보아왔는데, 미국의 여자 어린이들,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핑크색을 좋아하여, 핑크색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다양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상이 넓게 퍼져있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어서 더 눈에 잘 보였는지 모르지만,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곳에서도, 학부모회 등으로 학교에 가는 경우나, 아이들 옷이나 장난감을 사러 ‘Toys R us' 나 ‘Target'과 같은 마트에 가서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즉 이 사회가 젠더에 따른 색의 코드가 어느 정도 합의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Q 건수 : 여자애들은 핑크를, 남자아이들은 블루를 좋아한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색에 대한 이런 기호가 젠더에 따른 사회적 색이라는 말씀이신데... 어쩌면 부모들, 특히 엄마의 기호나 상업적인 목적이 아이들에게 투영됐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A 정미 : 맞아요. 처음에는 선천적인 기호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사회적 색이라는 것도 학습에 의해 은연중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어린이들이 보는 텔레비전의 광고를 보면서, 광고의 영향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TV 프로그램 중간에 자주하는 광고의 영향이 한국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특히 ‘바비'광고가 여자애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어요. 그 밖에도 헬로우 키티, 디즈니 캐릭터들, 토마스 기차, 슈퍼맨 등 어린이들을 겨냥하는 여러 브랜드들도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그러한 회사의 브랜드가 현대의 트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어린이들의 평상복, 잠옷, 칫솔, 치약 등의 일상용품에 자연스럽게 침투해 있는 만화나 영화의 캐릭터들 또한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더 관찰해보면, 어린이들의 그러한 성별에 따른 코드화된 색은 책의 내용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책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데렐라, 백설공주,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미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여자 아이들의 물건이 화장, 옷, 요리, 아이(인형) 돌보기 등 집안일에 관련된 장난감 등이 많고 남자애들의 경우는 칼, 권총 같은 공격적인 물건들과 로봇, 공룡, 토마스 기차, 장난감 공구류 등이 많습니다. 과학과 관련된 책들은 초록이나 푸른색 등 주로 차가운 색 계통으로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고요. 이러한 색에 대한 영향은 책의 내용, 어린이들의 생각, 또, 어린이들의 젠더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화된 사회, 젠더 그룹의 정체성, 행동 패턴 등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에게 선택되어지는 색은 겉모습 뿐 아니라,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떤 부모님들의 경우, 의식적으로 핑크색의 물건들을 덜 사주려고 하는 부모님들도 볼 수 있었지만 광고와 또래 집단의 영향이 더 강해 보였습니다. 제 경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로 놔두는 편입니다. 어떤 분들은 딸에게 핑크색의 물건을 덜 사줘야하는 게 아니냐 하고 하시기도 하는데요, 제 생각은 각 나이마다 좋아하는 시기가 다 있다고 생각해서, 억제하지 않고 놔두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요즘은 하늘색이 좋아졌다고 해요. 핑크를 좋아하긴 하지만요. 흥미로운 점은, Marjorie Garber의 ‘Vested Interests`라는 책에는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젠더에 따른 색의 코드가 반대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핑크색이 남자다움과 관계있는 색이었고, 연한 빨간색이 힘과 연관된 색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핑크가 강한 컬러로 인식된 반면에 푸른색이 섬세하고 우아해 보인다고 하여 여자애들에게 더 권해졌어요. 예로 1914년에 나온 “The Sunday Sentinel”이라는 미국 신문을 보면, 엄마들에게 충고하기를,“만약 당신이 이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을 따르려면, 여자 어린이들에게는 푸른색을, 남자어린이들에게는 핑크색을 사용하게 하라”는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대전 후 Time지에 보면 지금과 같은 성별에 따른 색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회, 정치, 문화적인 변화에 따라 젠더의 동등함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고 여권 신장 등으로 색에 대한 시각도 과거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핑크색이 상징하는 의미도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소녀취향의 색, 유치한 색에서부터 여성암 센터(미국)의 색 등으로 상징화되기도 하고요.

Q 건수 : 특정 시기에 특별한 색에 대한 기호도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아이들이 이 같은 단조로운 색 취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언 제쯤이나 될까요?
A 정미 : 대체로 3-4학년이 지나면서 핑크를 고집하던 여자애들도 핑크색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라색이나 연 하늘색 등을 선호하게 되는 경우가 늘지요. 사진을 찍으면서 발견한 현상은 여자애들의 경우,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남자애들은 특정 색을 좋아해서 파랑색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그 색깔들의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집을 방문하여 어린이들의 물건들을 꺼내 늘어놓으면, 많은 부모님들이“이렇게 우리 아이가 푸른색 또는 핑크색 계통의 물건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쉽게 만납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취향은 변합니다.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색깔로 선호도가 바뀌는 거지요.

Q 건수 : 나이와 성별, 엄마의 취향, 매스미디어나 장난감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에 의한 세뇌 같은 것이 은연 중 어린 시절의 아이들의 색에 대한 선호도를 결정한다는 것이 재미있군요.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떤 색을 좋아 하십니까?
A 정미 :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님이 노란색 투피스를 사주셨는데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검정색과 푸른색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청바지를 즐겨 입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Q 건수 : 궁금한 것이 여전히 많은데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여서 무척 아쉽습니다. 이번 다음 작가상'기념 전시가 좋은 반응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척박한 이 땅의 사진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로 성장 발전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