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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박물관
최연하 (독립큐레이터), 『월간사진』(2007년 5월), pp.68-79

 

그녀를 만나기 전에 다시 찾아간 동물원은 늦은 오후의 쏟아지는 햇빛과 먼지 속에서 조용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언제나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낯설고 이상한 지루함을 느낀다. 특히 어린 당나귀가 얼기설기 지어진 우리 안에서 고개를 내민 채 불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무기력하고 비현실적일 수가 없다. 이러한 느낌은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있을 때도 종종 다가왔다. 처음엔 그것이 공간이 가진 위력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 여자의 박물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작가를 만날 때 최소한의 정보(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외에 다른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 나름의 규칙이 생겼다. 그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떤 것'에 쌓여 상대방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를 만날 때면 그의 모습이 되도록 낯설었으면 좋겠고, 대신 시간이 흘러 충분히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생기길 바랄 뿐이다. 물론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미 수집된 정보로부터 작가의 작업을 분류하고 규정하고, 글의 방향에서 벗어나는 작업은 살짝 뒤로 제쳐둔 채 내 식대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윤정미의 작품을 볼 땐, 다시 봐도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다. 어떤 것을 알아내는 즐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닌, 볼 때 마다 새로운 즐거움은 이를테면 소격화 된 즐거움일 것이다. 우리가 항상 알고 있었던 것을 마치 전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끼게 되는 즐거운 함정이 윤정미의 작업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동물원에는 언제부터 동물들이 갖혀 있었을까. 도서관에는 언제부터 책이 수집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고 정리된 것일까. 그녀는 왜 살아있는 동물들이 갖힌 동물원을 촬영하다가 죽어서 사라진 동물들이 전시된 자연사 박물관을 찍었을까. 또한 <Space-Man-Space>, <핑크&블루 프로젝트>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진열된 상품이 팔리길 기다리며 전시의 효과를 보이고 있는 인사동 가게의 주인과,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뒤덮힌 어린아이의 방까지, 담겨있는 사물과 사람의 모습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 안엔 ‘공간-사람-사물-공간'이 있다. ‘결국 사진 찍는 행위 속엔 이미지를 수집하려는 작가의 욕구가 있는 것 아닐까요?' 검지의 움직임으로 탄생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를 보며 작가가 한 말이다. 그 많은 이미지는 작가의 작업실에서 ‘촬영일시, 소재, 잘 찍히고 못 찍힌 것, 컨셉'등 나름의 분류체계에 의해 의미가 획득되기도 하고 질서를 잡아나가기도 하며 그 안에서 규범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회화를 전공한 후에 다시 사진을 선택한 대학원시절, 푸코(Michel Foucault)를 공부하면서 일상의 보이지 않는 무수한 권력구조에 대한 고민으로 탄생한 <동물원>(1998~2000)으로부터 <핑크&블루 프로젝트>(2005~2007)까지 공간에 대한 해석이 남다른 윤정미가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예감처럼, 지독하게 현명한 이 여자는 이미 자기만의 박물관을 높게 세우고 있었다.

다시 봐도 새로운, 윤정미의 공간
<동물원>(1998~2000), <자연사박물관>(2001), <Space-Man-Space>(2000~2004)에서 윤정미는 ‘과거, 시간상 지나간 것, 혹은 부재하는 것, 살아있으되 화석화 되어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단편들을 하나의 연결된 공간 안에 모으면서 새롭게 각색해낸다. 동물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 <동물원>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동물'보다 ‘공간'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된다. 실내에서 촬영된 대부분의 사진에서는 화면에 밝은 부분이 어김없이 드러나는데 이는 갇힌 동물들의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통로(창窓)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봐도 새로운 <동물원>은 이 후의 윤정미 작업에서 좀체로 볼 수 없는 아주 서정적인 엘레지의 공간이다. ‘본성을 잃고 사육되어지는' 동물들의 모습이 박제된 동물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고, 작가의 시선은 자연스레 <자연사박물관>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오브제와 이미지들의 조합 혹은 오브제들의 차용을 통해 공간을 더욱 낯설게 하는데, 이는 부재하는 것들의 보존을 보증하는 역할을 해내는 공간의 권력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자연사박물관>에는 ‘과거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각색되어 상품화된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함의가 숨어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식의 자연사 박물관은 디스플레이 자체가 아주 조악하고 허술하여 그것들이 허구임을 명백히 자백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그 배면에 놓인 한국적 상황을 작가가 조심스럽게 건드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Space-Man-Space>에서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인사동의 상점 안 풍경들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사동은 그 가치를 인정시키기 위해 ‘전통'의 매우 특별한 유형에 대한 단정을 불가피하게 하는, 상당히 연극적인 공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사동에 대한 판타지는 그곳이 전통적인 공간(왠지 진품이 많을 것 같고, 우리가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숨쉬고 있을 것 같은)이라는 데에 있다. 이처럼 인사동은 그 자체의 공간이 창출하는 분위기로 일종의 가치가 되고 거기에 놓인 사물들이 현재의 필요성(잘 팔리는 관광 상품)과 역사적 관련성(전통으로서의 가치)에 힘입어 유지되는 특이한 공간이다. 마치 미술관에 수집된 오래된 물건이 갖는 의미처럼.
인사동의 상점 안에서, 이 후 그녀 삶의 공간 이동과 함께 그녀의 시선은 ‘핑크와 블루'로 가득한 아이들의 방으로 옮겨진다. ‘공간-사물-사람-공간'으로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탐색이 드디어 절정을 보이는 작업이다.

핑크/블루, 구별짓기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시각적인 것일까. 핑크와 블루로 가득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아마도 이 사진을 통해 어린시절 소유한 그들의 일상용품들을 세세하게 기억하게 되리라. 사진이미지가 대량 생산된 물건처럼 수백 장씩 복제되어 퍼지듯, 사진 속 아이들이 수집한 물건들은 이미 많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예를 들어 1959년 뉴욕의 장난감 상품전시회에 등장한 ‘바비인형'이 이후 30년간 4억 5,000만개가 팔려 나갔다고 하니 이 수치는 2초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선가 바비인형 1개가 팔려나가는 샘이 된다고 한다. 대체 이 ‘장밋빛으로 포장된 300그램짜리 플라스틱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아이들에게 눈부신 환상을 주면서 영원히 여성적인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어린 아이들에게는 사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프로이드 식대로 말해 ‘한 개인의 자아가 대상의 어떤 측면으로 변형되는 과정'일 수도 있고 ‘대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라캉의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어린아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어른들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상품들이 뿜어내는 환상을 즐기면서 자기애적인 욕구 혹은 욕망에 호소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생활과 지각을 조건 짓는 하나의 권력의 표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는 작가의 말대로 드라마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와 주위를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TV광고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되면서 어느새 규격화/표준화되는 우리네 일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것 혹은 그것들의 의미화가 무엇이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복잡하고 세련된 기제와 그것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이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동굴 속의 그림자를 실재로 여기게 하는 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작가의 어린 딸을 촬영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수많은 핑크빛 물건들을 보며 시작된 <핑크&블루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소비사회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러한 권력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코드화 된 색깔 ‘남자아이는 파랑, 여자아이는 분홍'을 통해 당연시 여겨온 사회적인 관습과 그 속에 은폐되어 있는 제한된 교육현실 속에서 어린아이의 정체성에 적극적으로 가담해내는 부모들의 억압기제를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일단 무척 재밌고 흥미롭다. 세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취향도 알 수 있고, 수집해 낸 물건이 가진 특성에 따라 아이들의 포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윤정미는 일련의 동일한 형식적 접근(일정한 카메라의 거리나 시선, 고른 조명)을 통해 하나의 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반복적인 리듬감은 확장되고 심화되어가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 그 안에 주제가 되는 컷들을 강화하여 관객들이 찾아내게 하는 과제를 내어준다.

뉴욕에서의 발견
‘감싸 안고, 벗어던지며' 쌓은 그녀의 박물관
작가의 이제까지의 작업이 ‘밖'에서 ‘안'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면, 삶의 공간의 이동으로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의 내용과 형식도 차츰 변화됨을 볼 수 있다. 이전 작업이 스스로 숙제처럼 부여한 엄격한 형식과 내용을 견지해 냈다면 뉴욕에서는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성으로서, 이방인으로서의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갑자기 옮겨진 뉴욕에서 생활도 어렵고 버거울 터인데 ‘핫셀'의 정사각형 프레임은 분명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녀는 불연듯 35mm 카메라를 메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그곳에서 곳곳에 유령처럼 널려 있는 너무 많은 성조기(어디에서나 의례 판매되는 스티커에서부터 차 유리, 건물 벽, 쓰레기봉투에까지)를 보며 낯설고 당혹스러웠다고 한다.<성조기시리즈>(2004~2005) 뿐만 아니라 뉴욕 공립 도서관에 있는 ‘Picture Collection`파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국관련 파일을 보며 그 분류방식과 수집된 내용에 놀라게 된다. 그것은 도서관 사서에 의해 분류된 한국관련 파일이 고작 12개에 불과한 것과, 게다가 분류된 파일 안에 남/북한의 이미지가 마구 섞여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Korean War`파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에서 20%나 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모든 이미지들과 정보들은 누군가에 의해 한 번은 걸러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역설적으로 비치보이스의 코코모(BeachBoys, KoKomo `영화 칵테일의 ost`)와 함께 비디오, 사진,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Korea in NYPL>(2004~205)에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새롭게 획득된 가치체계에 따라 분류되는 기록보관소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다. 도서관에 수집된 자료들은 이처럼 구성되는 것이며, 무엇인가를 포함시키고 무언가를 배제하면서 필연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작가의 일상이 잘 드러난 작품 <Red Face>(2005)는 뉴욕에서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작된다. 1년 연수 프로그램을 마친 남편이 먼저 한국으로 떠난 뒤, 학교를 다니고 있던 작가와 두 아이만이 덩그렇게 남은 시점이었다. 어린 두 자녀를 돌보면서 강도 높은 학교수업을 해낼 수밖에 없는 일상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거울 속 지친 여인의 얼굴을 보며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며느리, 딸, 아티스트, 미국 내에서의 코리언으로서의 역할을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순도 높은 새빨간 립스틱은 그녀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펜'의 역할을 해낸다. 썼다가 지우기를 계속 반복하는 동안 립스틱의 매끈한 질감 위로 흘렀을 눈물과 함께 거울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작가의 힘겨운 일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업이다.
동양에서 온 작고 여리게만 보이는 외모의 이 여인은 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며 안간힘으로 뉴욕생활을 버티어 냈을 것이다. 무엇이 이 작가의 버팀목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탄탄하게 지어 온 그녀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진박물관이 거기에 있었다. 그녀의 박물관에 수집된 작품들은 거울처럼 투명하게 이 사회와 문화, 그 이면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가로지르고 있다. 사방이 거울인 이 박물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을 보며, 관람객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확인하고 구별해내는 모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내가 만일 뉴욕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라면 그녀를 이렇게 분류해 놓겠다.
‘윤정미 , 2007년 5월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위치!'

윤정미 JeongMee Yoon
E-mail : jeongmee.yoon@gmail.com : http://photyoo.simspace.com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서양화과, 홍익대학교 사진디자인 전공.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Photography, Video and related Media 를 전공했으며, 쌈지 스튜디오 프로그래(2002)와 ISCP 레지던시(2006)에 참가했다.
주요수상으로 IPA와 Santa Fe Center for Photography (Honorable Mention), 미국(2006), 다음작가상(2006), Photography Now-One Hundred Portfolios(미국, 2006) 등 10여 회의 수상경력이 있다.

동물원(갤러리보다, 서울, 1999), 자연사박물관(갤러리보다, 서울, 2001), 핑크&블루 프로젝트(금호미술관, 서울, 2006)등 네 번의 개인전과 올해 뉴욕과 스페인에서 두 번의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Private/ Public (Jenkins Johnson gallery), Resonance (PCNW gallery), 부산 비엔날레(부산), 루프 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스페인), 제4회 광주비엔날레, 등 서울과 미국, 스페인 등에서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올해 4월 13일자 LIFE magazine(미국)의 표지와 내지에 Pink Project 작품이 소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