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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Relay (인터뷰)
정리: 신혜영 (기자), 『월간미술』(2002년 6월)

 

지난 릴레이 작가 고승욱이 추천한 이번 달 주인공은 사진작가 윤정미다.
그녀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주위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의식까지 폭넓은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정직하게 사진에 담아낸다. 그녀의 길지 않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작업 여정을 들여다본다.

쌈지스튜디오 앞에서의 윤정미(오른쪽)와 고승욱
윤정미 : 추천해 줘서 고마워.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하나….

고승욱 :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 보면서 차례차례 얘기해 보는 편이 좋겠지? 처음에는 터널을 주로 찍었구나.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의 표현인가?

윤: 그랬을지도 몰라. 사람들 대부분 살면서 제도나 규율에 갇혀 있다는 생각 많이 하잖아. 그래서 터널을 삶의 여정 혹은 통로에 비유하고 제목을 〈passage〉라고 했어. 무엇보다 당시 내 상황이 그랬어. 대학교 졸업할 무렵 참 막막하더라구. 졸업하고 판화를 1년 정도 하다가 결혼하고는 작업을 막 시작해 보려고 작업실도 구하고 했는데, 아기가 생기면서 못하게 됐지. 어느 날 문득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실해지더라구. 그때 내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길은 대학원을 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마침 당시에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사진작업을 하게 됐어.

고: 사진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래도 사진에서 느낀 매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완결된다는 점이 좋았어. 그리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는 활동성도 매력 있었고.

고: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하고 지금은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른 두 가지 매체를 경험해 보니 어때? 둘 사이에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

윤: 글쎄. 회화가 붓터치나 형태변형 등을 통해 어떤 사실이 한 번 걸러진다면, 사진은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다큐멘터리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아. 그래서 만일 한 인물을 찍을 경우 의도하지 않아도 옷, 화장, 머리스타일 등에서 그 사람의 역사가 보이고, 주위 배경에서 당시 시대 상황이 드러나기도 해서 내가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것 같아.

고: 상점 주인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네. 이 작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

윤: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 내곡동에 위치한 서초조형예술원의 서용선 원장님께서 재작년에 그 지역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조성하고 예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혀 보자는 취지로 내곡동에 관한 전시를 하고 싶어하셨어. 기회가 되어 김용우라는 사진가와 〈내곡동의 인물과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2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그분은 내곡동 풍경을 찍고 나는 인물을 찍었지. 슈퍼마켓?문방구?부동산?농원?정육점 등 각자의 일터를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듯이 인물을 촬영했는데, 이때 인물뿐 아니라 배경이 되는 일터에 진열된 물건이라든가 환경의 세밀한 부분까지 뚜렷하게 보이도록 조리개를 최대한 조여서 찍었지.

고: 그 후에 인사동을 중심으로 같은 방식의 사진을 찍고 있는 걸로 아는데….

윤: 같은해 〈텍스트 타워-인사동 판타지〉라는 전시에 출품하게 되어 그때부터 인사동 상점들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사동뿐 아니라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종류의 상점을 같은 방식으로 찍고 있어.

고: 어떤 사진들은 인물이 주위 물건들에 묻혀서 두드러져 보이질 않네.

윤: 그 점이 재미있더라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배어나는 느낌일 수도 있고, 자신이 의식적으로 그 직업의 분위기에 자신의 외모를 맞춘 것일 수도 있고, 어쨌든 사람들의 인상?복장, 심지어는 표정까지 외모에서 풍겨 나오는 모습과 그 장소에서 파는 물건이나 주위환경이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말야. 그 물건을 팔게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 인물이 따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주위에 배열된 물건들의 일부처럼 보이는 거 같아.

고: 그러다 보면 혹시 그 직업에 맞는 전형적인 이미지의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거나 하지는 않나?

윤: 글쎄, 사진을 찍을 당시보다는 나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고: 왜, 그래도 그런 느낌이 비교적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선택해서 찍거나 많은 사진을 찍고 그중 선택을 할 때 그런 느낌이 나는 사진을 고르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윤: 사실 생각보다 섭외가 잘 되질 않아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야. 지금으로서는 충분한 양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거든. 그리고 인물과 그 인물의 배경이 되는 상점 안의 풍경이 불가분의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상점에 있는 물건들이거든. 내가 이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이 보통 구청에서 분류하는 기존의 통계를 따른 직업적 분류를 깨고 내 취향과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새로운 유형학을 제시하는 일이야. 그렇게 나만의 분류체계로 사진을 보여 줌으로써 부분을 통해 전체를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아.

고: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을 수집해서 너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어야겠구나. 열심히 해야겠네(웃음). 분류체계라는 면에서 이 작업을 자연사박물관 시리즈와 연결지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연사박물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

윤: 그 전에 먼저 〈동물원〉 시리즈를 찍었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사회구조나 제도에 속박된 인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동물원의 공간구조가 원형감옥의 팬 옵티콘(일망감시) 구조에서 따왔다잖아. 우리 사회 내에서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곳곳에 감시와 제한이 내재화되어 있다고 생각해. 우리 스스로 사회의 구조와 제도에 길들어져 자연적으로 통제되기도 하고, 교육시스템에 의해 길들기도 하고, 또 실질적으로 윗사람이 뒤에서 감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회사의 구조나 학교 교실 문에 감시를 위해 만들어진 위아래 창문들을 봐도 그렇고 말야.

고: 처음에 터널을 찍을 때 가지고 있던 ‘탈출'이나 ‘속박' 같은 정서를 자기 투사적인 시각에서 점차 사회로 눈을 돌리면서 객관화하고 확장해 나갔다고 보면 되겠네.

윤: 그런 것 같아. 동물원에서 자연사박물관으로 옮겨가게 된 건, 동물원 사진을 계속 찍던 무렵이었는데, 어느 날 과천 동물원을 지나다 우연히 표본실에 들어가 보게 됐는데 박제되어 있는 동물이 참 흥미있게 다가오더라고. 사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도 실제 살아 있기는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문화의 산물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살아 있는 동물이라고 보기는 힘들잖아. 그렇게 살아 있는 동물과 박제되어 있는 동물이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사박물관으로 소재가 옮겨 가게 된 거지.

고: 동물원의 역사가 원래 고대 제국주의 시대에 왕들이 이국적인 동식물을 사적 정원에 옮겨놓고 세력을 과시한 것에서 왔다지, 아마. 그러고 보면 동물원에 살아 있는 동물이나 표본실에 박제된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지. 그런데 우리 나라에 자연사박물관이 있나?

윤: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없고 몇몇 대학교 안에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 있는데, 예산과 장소의 어려움 때문인지 규모도 작고, 박제된 상태나 뒷배경 그림(디오라마)이 조악하기도 하고, 확실한 리서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분류되어 있다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고….

고: 사실 ‘분류체계'라는 것이 근대화의 일면인데, 자연사박물관이 분류체계로 이루어진 것인 만큼 급속도로 진행된 우리 나라의 근대화를 반영하는 것 아닐까?

윤: 맞아. 그런 점이 내가 〈자연사박물관〉 사진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도 해.

고: 동물원까지는 흑백으로 찍다가 본격적인 자연사박물관 작업을 하면서는 컬러로 바뀌었는데, 의도한 바가 있어?

윤: 자연사박물관의 생경한 색들이 보여 주는 조악함을 컬러사진으로 찍어서 효과적으로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어. 흑백사진 특유의 아우라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져서 내가 찍고자 하는 우리 나라의 자연사박물관 모습을 제대로 담아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거든. 자연사박물관 시리즈에는 컬러사진이 흑백사진보다 적절한 매체라고 생각한 거지.

고: 작업에 따라 매체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해. 그런데 대학 때 회화를 전공한 것이 사진작업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아?

윤: 서양화과를 나왔기 때문에 사진을 할 때 설치를 해야 한다든지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사람들이 종종 선입견을 가지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한 강박관념은 전혀 없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되겠지만,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작업하는 데 유리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물론 기술적인 부분을 익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은 전제로 하고.

고: 매체가 주는 중압감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야기인 듯한데.

윤: 그래. 그러나 내가 익숙하지 않은 어떤 매체를 다룰 때에는 기술적인 부분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미술하는 사람들의 동영상 작업을 영화 하는 사람들이 볼 때처럼…. 하지만 기술적인 면은 작가 스스로 한계를 느껴 계속 노력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봐. 하지만 작업 의욕이라든지 상상력 같은 것은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

고: 정미씨한테 사진은 작가의 영감과 상상력을 표현해 내는 하나의 ‘매체'라는 생각이 드네.

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최상의 상태로 보여 주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면과 상상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해.

고: 앞으로도 계속 사진 작업을 할 것인지?

윤: 아직은 뭐라고 확실히 답하기 그렇네. 당분간은 사진을 하겠지만 사진을 고집하겠다는 생각은 없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데 가장 적합한 매체를 찾아 표현하도록 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선 여러 매체를 접해 보고 싶기는 해.

고: 아이 둘을 가진 엄마로서 힘든 점이 많을 텐데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아.

윤: 사회 생활하는 모든 여성이 부딪히는 문제들이란 게 있겠지. 특히 경제적인 부분이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 작가일 경우는 더 심각하겠고.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모두 감수해야겠지.

고: 이번에 광주비엔날레 워크숍 열심히 참석했잖아.

윤: 우리 작업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어.

고: 플라잉 시티 사이트( www.flyingcity.org ) 중 ‘윤정미의 도시 탐사'에 있는 내곡동과 인사동 사진도 반응이 좋더라.

윤: 지금 하고 있는 인사동?청계천?을지로 사진작업은 앞으로도 꼭 전시 형태가 아니라 웹상에서 등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을 구상중이야.

고: 앞으로 당분간은 그 작업을 계속 하겠구나.

윤: 그럴 생각이야. 지금은 우선 촬영을 하는 단계지만, 작업량이 충분히 쌓이면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결과물들을 추출해 낼 수 있을 것 같거든. 그 다음 작업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 하지만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지 못하는 내 성격상 또 다른 일을 벌이겠지.


윤정미는 196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산업디자인과 사진디자인 전공을 졸업했다. (1999)와 <자연사박물관>(2001)두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고요한 나라>(1998) <신사동 - 야쿠르트 아줌마>(2000) 텍스트 타워 - 인사동 판타지>(2000) <인공/생명>(2001) 등의 그룹전에 참여 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Project 1 대안공간 워크샵과 Project 3 에 참여했고, 현재 쌈지 스튜디오 제 4 기 레지던스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