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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낯익은 그 곳 : 내곡동의 인물과 풍경 서문
김태현 (사진평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이것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계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 성장하면서 모든 시스템이 그곳에 집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의 시선은 도시라는 공간 안에 구성되어 있는 여러 가지 시선의 코드에 따라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시선의 코드는 우리를 둘러 싼 환경을 더욱 도시적이며 문명적으로 보게 만드는 이유이다. 이러한 도시적 시선의 코드는 일반적으로 도시를 정돈되고 세련되고 깨끗한 이미지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유포시키고 있다-희망찬 도시의 새아침과 같이.

하지만 우리가 도시 생활을 하면서 보게 되는 것은 이러한 이미지와는 다른 공간들이 대부분이다. 희망찬 이미지로 구성된 도시의 함족에는 우중충한 콘크리트 덩어리의 빌딩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인공적으로 끌려들어온 자연 같지 않은 자연이 공존한다. 공원이나 고수부지, 동물원, 식물원 같은 것들은 모두 이렇게 도시 속으로 이식된 자연적 공간들이다.
그리고 인공적으로 구성된 자연 중의 하나가 개발제한지역이다. 도시적 삶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으로 지정, 구획된 개발제한지역은 자연이면서 동시에 도시 안에 존재하는 지역이다. 그 중의 하나 - 내곡동.


김용우와 윤정미는 이렇게 도시 안 개발제한지역에 위치한 서초구 내곡동 지역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중략-

윤정미는 이 지역을 사는 사람들을 촬영함으로써 타인이 느끼는 낯설음을 극복하려 한다. 이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채집이라도 하듯 하나하나 모아 놓은 그의 사진에서는 타지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낯설음은 사라져 있다. 염곡 정육점 주인 아줌마는 우리집 앞 하안 정육점 아줌마와 같고 주유소 주유원 역시 그렇다. 단지 이곳이 내곡동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간간이 보이는 간판의 전화번호일 뿐이다. 이 지역의 여러 가지 직업군을 유형별로 조사해서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기록해 가는 그의 방법론은 이러한 일반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는 원인이다. 그래서 보통의 인물사진이 얼굴의 생김새를 주로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그의 인물사진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길을 끌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 - 구멍가게의 과자나 세탁소의 옷들, 교회연단을 장식한 꽃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 이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또한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주변의 모습들 뿐만아니라 그의 사진에서 눈길을 잡는 것은 사진의 주인공들이 입고 있는 옷이다. 파출소 앞에 서 있는 경찰관이야 당연히 경찰이 입어야 할, 경찰임을 증명하는 제복을 입고 있지만, 그 밖의 다른 사람들, 자유업에 종사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옷 역시도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나타내 주는 유니폼과 같이 보인다.
방앗간 집 아주머니는 꼭 방앗간 주인만 입을 것 같은 그런 옷을 입고 있고, 세탁소 주인아저씨는 언제나 목 티를 입고 있으며 연단 앞의 목사님은 막 설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경찰의 제복이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 사람의 직업을 표상하는 하나의 문화적 기호이다. 그래서 자신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경찰이 경찰 제복을 통해 ‘내가 경찰이요'라고 말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나는 누구요'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윤정미의 사진에서는 이러한 개인적인 유니폼과 함께 그 유니폼의 의미작용을 고정시켜주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함께 제시해 줌으로, 특별한 의미의 개인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써 어느 직업인을 볼 수 있게 해주며, 이러한 방법론은 타지로서의 내곡동이 아닌 우리 주변으로서의 사회적 환경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한 지역을 선택해서 그 지역을 기록할 때 우리가 가게 되는 선입관은 그 지역에 대한 정체성을 사진에 담아내야 한다는 사진가로서의 사명감이다. 그래서 사진 안에다 그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라는 칼을 들이대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느 지역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며 그것을 사진으로 객관화 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된 하나의 오류일 뿐이다. 이것을 그 지역을 기록하기 위한 하나의 원칙이라기보다는 그 지역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과 함께 촬영 당시 작가의 주관적 불안감이 만들어 낸 강박관념인 것이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의미들을 한 곳(사진)에 붙잡아 매려하는 이러한 시도는 정체성이라는 괴물이 어딘가에 숨어있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정된 정체성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먼저 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정된 정체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작가인가? 라는 질문 또한 해봐야 한다. 그런데, 적어도 이번 전시의 김용우, 윤정미 사진에서는 내곡동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은 볼 수 없다. 이들이 비록 내곡동이라는 어느 특별한 지역을 촬영 전시하고는 있지만, 이들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내곡동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소와 사람에 대한 사진적 기록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 이것은 어떤 지역의 정체성이 사진을 통해 재현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고 무언가에 의해 고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이 곳이 내곡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전시 제목을 통해서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