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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박제/가짜의 표본/소유의 정치학 : 윤정미의 [동물원],[자연사박물관],[인사동 I-고미술품점] 사진들
강수미, 『서울생활의 재발견』(2003), pp104-107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은 고대 중국의 신화집인데, 갖가지 동물을 그림과 함께 이야기체로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은 신화집이어서 여기 나오는 동물은 당연히 모두 상상의 동물, 신화에 등장할 만한 동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이 실제 하는 양 고대 중국의 사회 · 역사 · 지리 · 민속 · 종교라는 그물에 엮여 하나의 사건들로서 기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 몇 가지만 옮겨 보면,

우리가 아는 호랑이와 비슷한 몸과 사람 얼굴을 한 동물 그림에
“다시 서쪽으로 200리를 가면 만거산이라는 곳인데 산 위에서는 금과 옥이 많이 나고 기슭에서는 조릿대가 많이 자란다. 이수가 여기에서 나와 동쪽으로 낙수로 흘러든다. 이곳에 이름을 마복(馬腹)이라고 하는 짐승이 있는데 생김새는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하고 소리는 어린애 같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든지,

물고기 형상에 수족이 달린 것에,
“능어(陵魚) 는 사람의 얼굴에 팔 다리가 있고 몸둥이는 물고기인데 바다 한 가운데 산다.”
라고 해 놓았다.

한 몸에 얼굴이 셋인 괴물을 그려 놓고,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에 대황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 이곳의 어떤 사람은 얼굴이 셋인데 전욱의 아들로 세 얼굴에 외팔이다.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는다. 이곳을 대황야라고 한다.” 여기 인용된 산해경의 단편들은 정재서 역주, 『산해경』, 민음사, 1997 개정판, p. 165, 278, 314를 따랐다.

라며 진실인 듯 말한다.

언어가 다 표현하지 못하는 기묘함과 묘한 이국성을 가진 이 산해경의 그림들은 단순한 필선으로 농담(濃淡)도 없이 그려져 있지만, 그렇게 묘사된 동물들은 상상에 의해 부여된 특징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실제 하는 것들을 보고 그린 듯 하다. 그리고 이 동물들을 등장인물로 구성한 다큐멘터리 같은 픽션은 정말로 고대 어딘 가에서는 이러한 동물들이 살았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대 중국인들은 상상을 믿었고, 상상력을 긍정했으며, 그 상상의 이미지들이 진짜라고 믿음으로써 진짜로 그것을 소유-즐겼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중국의 기서를 들이대며, 재미있지 않냐고 묻는 이 글은 사실 오늘의 우리가 동물을 포함한 자연을 무엇으로 보는지, 근대적 이성에 훈련된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하게 그들을 보는지 말하고자 함이다. 아니 진심은 오늘날 여러 공사다망 속에 상상력이 박제된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오늘날 문명화 된 우리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우대하거나, 동물원의 장난감으로 즐기거나, 학교,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죽어 있는 그들을 학습용으로 사용한다. 휴일 아닌 평일에도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이나 갤러리아 백화점 앞, 한강고수부지에는 사람들로 넘쳐 나지만, 개중에는 거의 사람에 가까운 용모의 애완견과 함께 걷는 사람들도 많다. 귀 털은 길게 길어 파마, 염색을 해서 리본으로 묶고, 몸에는 저고리를 입고, 신발을 신은, 인간의 대우를 받는 견공들. 산해경의 저자들이 봤다면 바로 그 상상의 동물이라 지목했을 만한 용모의 애완견들은 ‘견공'이라는 존칭 속에서 동물 그 본연의 자세를 박탈당한다.
동물원은 어떤가? 인류가 수렵생활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동물은 사육, 관상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근대동물원은 1752년 오스트리아의 빈에 설립된 쇤브룬동물원이 시초다. 한국에서는 1909년 11월 1일 창경원동물원이 1882년 일본 도쿄[東京]의 우에노[上野]동물원, 1903년 일본의 교토[京都], 1906년 중국의 베이징에 이어 동양권에서는 네 번째로 순종 황제 임석 하에 개설되었다. 오늘날 동물원은 두산세계대백과 사전에 정의되어 있듯 인간의 교육적 목적을 위한 “일종의 박물관이며 사회교육시설”이고 “레크리에이션으로서의 효과도 크다.” 그러니까 동물원은 애초부터 인간을 위한 인간들의 교육장이며 놀이터였다. 자연생태계의 파괴로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한 체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앞서의 사전이 “과학박물관 중 자연계를 구성하는 자료 및 현상, 자연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자연사과학 및 자연교육의 입장에서 다루는 박물관”으로 정의하는 자연사박물관 또한 살아 있는 자연이 아니라 죽은 자연을 다룬다는 것, 과학이라는 학문연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 수집되는 대상 범주가 더 넓다는 것 등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체계라는 점에서 동물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은 채집, 분류되며, 살아있는 자연의 증거물로서 외형만 박제되며, 각종 데이터의 추상적 언어로 변환된다. 동물원이 동물들을 그들이 원래 속했던 환경으로부터 떼 내어 인간들의 놀이터로서 조성된 가짜 자연에 안치시킨 곳이라면, 자연사박물관은 이미 죽었거나, 멸종한 자연을 가지고 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자연을 사물화 하는 곳이다. 그 곳은 중국의 산해경에서 보이는 지나친 상상력이 발휘되어서는 곤란한 곳이며, 상상의 동물은 그 곳의 취급품목이 아니다. 부정적으로 얘기하자면 자연사박물관은 상상력이 박제된 곳, 진짜가 표본화되어 가짜 자연으로 수집된 곳, 자연을 죽은 상태로 소유하는 곳이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은 근대가 발명한 자연소유의 장소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인식론적 맥락을 배후로 한 동물원, 자연사박물관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공적인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윤정미의 사진은 19세기 서구의 근대에 발명된 사진이 그 여명기부터 행했던 실증 과학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따르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근대 과학적 이성의 부조리를 증거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이 처음 서구사회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곳이 프랑스 하원이며, 그 발표자가 물리학자라는 것은 모른다고 하더라도, 또 초창기 사진에 대해 가장 크게 기대한 분야가 예술 영역이 아니라 천체 관찰과 같은 과학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모르더라도, 사진이 자료와 증거를 필요로 하는 과학의 보조 도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윤정미 사진은 바로 그 지점의 미묘한 이율배반을 드러내고 있다. 즉 가장 이성적인 도구를 그 애초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면서 그것이 배태하고 있는 부조리함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다소 연민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 감정 자체가 부조리한 <동물원>시리즈 사진 중 고릴라를 찍은 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서 고릴라는 마치 우수에 젖은 인간처럼 동물원 우리 창틀에 기대어 밖을, 자신의 고향인 야생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가는 그것을 찍을 뿐이고, 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보지 못하는 고릴라를 그 동물원 사진에서 볼 뿐이다.

그녀는 동물원의 동물과 그 우리를 찍었고,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찍었으며, 서울의 여러 지역에 사는 구체적 개인들을 그들의 공간에서 찍어 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더 디테일하게 보아야 할 것은 윤정미의 사진이 기술하는 공간은 모더니즘의 원류이며, 그것이 완성된 서구가 아니라 그 원본이 이식된, 그래서 이미 서구의 복제일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의 이 곳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성과 합리성에 의해 구축된 서구의 동물원이나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다문화시대에도 여전히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동하는 형편에서 한국, 서울의 그 곳들은 서구를 참조하고 지향할 수밖에 없다. 윤정미의 <자연사박물관>시리즈 사진은 그러한 형편을 잘 드러내 준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실정에서 윤정미는 서울의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의 내부와 소장품 등을 찍었다. 일련의 사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에 채집된 표본들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그 사진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박물관의 소박한 규모와 현실적 한계조건이다. 예를 들어 자연사박물관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 경희대 학교 교정을 찍은 사진에는 돌로 조각된 사자상이 서 있는데, 이 사자상은 박물관에 박제된 사자상 사진을 환기시킨다. 아니 오히려 경희대의 상징동물을 표상한 돌사자상이 학교부속 박물관의 표본목록 구성에 일조했을 것이다. 이 시리즈 사진 중 박물관의 박제된 사자가 경희대학교 교정인 게 분명한 드라마틱한 하늘배경의 그림 앞에 서 있는 사진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경희대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사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죽은 자연을 표본, 박제하는 과학의 장소이면서, 학교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장소로서도 기능하는 것이다.

죽어 사물화 된 가짜 자연을 보호, 수집, 관찰, 보존하는 동물원, 자연사박물관은 이제 그나마 실체라는 다소 무거운 옷조차 벗어 버리고 비물질화, 이미지화 된다. 사이버동물원, 가상박물관은 그 좋은 예일 뿐이다. 우리는 동물을, 자연을 고대 중국인처럼 상상 속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포획 · 소유하는데 그것은 알고 보니 죽은 자연, 상상력이 배제된 이미지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