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_artworks
menu_curriculumvitae
menu_texts
menu_contact
   
 
윤정미 전 (‘자연사 박물관 ’전 리뷰)
이경률, 『월간미술』(2002년 2월)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을 가진 작가의 사진전은 말 그대로 동물원과 식물원이었다. 겔러리 2층과 3층에 전시된 사진들은 실제 박물관 장면을 그대로 전사한 듯한 일종의 `사진으로 다시 보는 박물관 견학`이었다. 적어도 사진이 보여 주는 지시대로 따라 읽는 사람에게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박물관 보고서일 뿐이었다. 언뜻 보기에 다소 긴 내용으로 도록 뒷부분에 첨부된 글도 사진에 대한 해설이나 주석으로 보였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논리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전혀 수상한 것이 없다. 무엇이 어떻다는 것인가? 왜 이러한 보고서를 전시하는가?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우리는 거기서 재현된 사진의 유일한 목적이기도 한 `과학과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논리와 논리 사이의 황당한 상황설정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것이다. 결국 사진들은 사진적 진술과 텍스트(상황적인 설치)의 조합에서 뭔가 뒤틀린 어떤 상황적 모순을 암시하고 있으며 또 그와 같이 문화적으로 길든 우리의 맹신을 폭로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전시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사진전이 아니라 `텍스트-이미지`와 유사한, 말하자면 `실증-이미지`라는 함정을 파 놓은 일종의 사진-설치 형식으로 된 개념미술 작품으로 간주된다.

좀더 엄밀히 말해 이러한 폭로적 행위 이면에는 이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성(사진적 행위)이 작품의 실질적인 배경이 되는데 그것은 명분과 물질 중심의 두 의미가 만나 발생시키는 사건의 생성(표면효과 : 질 들뢰즈, 《의미의 논리》( 이정우 옮김), 1999, 한길사, 역설적 계열 2 : 표면효과들 참조)이다. 이와 같이 제시된 과학적 자료, 특히 도감이나 표본 등과 같이 어떤 특정한 목적과 명분을 위해 활용된 과학적인 진술은 우리에게 거의 절대적 신빙성을 강요하며 거기서 우리는 어떠한 의심도 가지지 않고 순응해 왔다. 이러한 신빙성을 위해 동원되는 대부분이 실제 증거물인 박제와 표본이지만 오늘날 영상정보시대에서 사실상 사진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지 않는가? 작가 윤정미가 이러한 사진을 통해 진정으로 던지는 의문은 단순한 논리적 모순의 고발이 아니라 우리 이성 주위를 배회하는 의미들의 동공, 즉 시뮬라크르(음영)다.